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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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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노

득지/경제
활동시기
고려시대
본관
출생시기
1366년(공민왕 15년)
시대

상세설명

홍노(洪魯) 선생의 자는 득지(得之) 호는 경제(敬齊) 관향은 부림(缶林)으로 한 것은 고려 시중(侍中) 난(鸞一作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처음에 남양홍씨와 같은 조상인 학사공(學士公) 천하(天河)의 후예로서 시중공에 이르러 부림현(缶林縣)에 옮기고 부터 부림이라 관향했다. 선생은 1366년(공민왕 15년)에 태어났으며 진사(進士) 민구(敏求)의 아들이요 감무(監務) 연(漣)의 손자이다. 어릴 때부터 장아(莊雅)하고 수미(粹美)했으며 7세에 이미 효경(孝經)에 통했고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성(長成)해서는 성리학(性理學)에 전념했고 고금가례(古今家禮)와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등을 열심히 읽었다.

일찍이 과거에 본 뜻이 없었는데 부친이 " 대저 어려서 글을 배우는 것은 커서 실행함에 있는데 하물며 어버이가 늙어 집에 있음에랴"하니 드디어 공은 과거 보기를 마음 먹었다. 나이 22세에 생원에 뽑히고 25세에 별시(別試)에 급제하니 1390년 (공양왕 2년) 6월이었다. 젊은 나이에 문장이 훌륭했고 덕망이 높아 함께 급제한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났었다. 조정안에서 추앙(推仰)을 받았고 임금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어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除授)하고 이어 문하사인(門下舍人)에 올랐다. 평생에 학문함이 성실경건(誠實敬虔) 함으로써 임금님의 덕을 이루게 할 뿐이라고 했다.

1392년 조정의 정치가 날로 그릇되고 정세가 더욱 어지러워지자 공은 귀향을 결심하고 병이라 일컫고 물러났다. 부림현 율리(栗里) 고향집으로 돌아온 공은 벼슬의 뜻을 버리고 어버이 진사공을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고 실호(室號)를 경제(敬齊)라 했다. 1392년 병으로 인하여 27세로 세상을 떠나니 지금의 산성면 백학동에 장사 지냈다. 예조참의(禮曹參議) 허조(許稠)가 쓴 선생의 시집서(詩集序)에 보면 "홍공은 외조상(外祖上)인 최구제(崔九齊=최충(崔沖))의 법도 있는 훌륭한 학문을 이어 한결 같은 성정지학(誠正之學)으로 몸가짐이 근중(謹重)하여 세상의 종사(宗師)가 되었다. "고 하며 그러나 " 아깝게도 중도에 요절(夭折)하여 좋은 때에 포부를 펴보지 못하고 가언선행(嘉言善行)을 세상에 전하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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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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