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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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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수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선생은 고려조 장군으로 경헌공 현담윤(景憲公 玄覃胤)선생의 아들로서 본관은 연주(延州)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골격이 장대하고 담력이 컸으며 의기가 높아 큰 소리를 잘 쳤으나 천성이 총명하였다. 당시 연주 분도 장군이었던 김치규(金稚圭)가 어린 선생을 보고 총명하고 비범함을 알고 발탁하여 서울에 데리고 가서 독서케 하니 대의에 통하고 학문에 능통하였으나 문과에 불운하여 여러 번 실패하였다. 마침내 병을 얻어 고향에 돌아가 있었는데 병이 완치된 후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다.

117년(고려 명종 4년)에 조위총(趙位寵)이 란을 일으키자 절령( 嶺) 이북 40여 성이 다 이에 응했으나 도령(都嶺)인 아버지 현담윤(玄覃胤)선생과 함께 성을 고수하였다. 주인(州人)들의 추대로 권행병마대사(權行兵馬臺事)가 되어 조위총(趙位寵) 이 회유차 보낸 사절을 잡아 죽이고 불응 하였으며 그후 권감창사(權監倉史)가 되어 서경의 군사 1만에게 성이 포위되자 이를 쳐 궤멸시키고 다시 서울에 진격했다가 패퇴한 서경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포위해 왔으나 이를 대파 하였다. 이듬해 금나라 세종(世宗)이 그들 부자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원병을 보내 왔으나 이를 사양하여 돌려 보내고 나니 또 다시 성이 포위공격 당했으나 이를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아버지 현담윤(玄覃胤)선생은 장군(將軍)이 되어 내시지후(內侍祗侯)에 오르고 이어 안남도호부부사(安南都護府副使)로 부임하여 잘 다스려 백성들의 숭앙을 받았다. 그후 도관랑중(都官郞中)을 거쳐 이부랑중(李部郞中)에 임명되자 변두리 지방민으로서 과분하다는 간관들의 반대로 병부랑중(兵部郞中)에 전직되었으며 사재소윤(司宰少尹)을 거쳐 신종(神宗) 때 전중감(殿中監)이 되고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러 직을 물러나고 1215년(고종 2년)에 졸 하였다.

참고문헌 : 인명대사전, 국사대사전, 한국인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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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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