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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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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하양 허씨 성은 1382년(고려 우왕 8) 한성판윤 간숙공 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402년(태종 2)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이 되고 예조, 형조좌랑에 병조좌랑을 역임하고 1411년(태종 11)에 사헌부 지평이 되고 공조정랑, 사헌부 장령을 하였고 1422년(세종 4)에 사간을, 1425년에 경차관(각도의 검열과 정사를 조사하는 임시직)이 되어 거제도에 갔을 때 왕에 계청하여 읍성을 축조함으로써 왜구에 대비하여 도민을 보호하였다. 1430년에는 왕명을 받을어 고려 왕릉을 수축하였다. 이해에 모부인이 병환이 있은 바 왕이 고기와 해채를 하사하였다. 허성이 모부인 병을 돌보기 위하여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사직할 것 없지 않소. 집에 가서 병시중 들면서 명소를 기다리시오"하고 세종이 달래었다.

세종이 얼마나 아끼신가를 알 수 있다. 모부인의 상사를 당하였을 때는 왕이 종이와 초, 관, 석회 등을 하사하였다. 1431년에 대사헌에 배수하자 상소하여 이 양이 뇌물을 받은 죄를 논하였고 다음 해에는 전라감사 박곤을 파면하도록 청하였다. 미루어 보건대 아버지 허주, 숙부이신 허조의 가훈에 따라 재물과 이득을 가벼이 하고, 성품이 엄숙하여 부정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기도 관찰사,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예문관 대제학에 이르렀다.

1442년(세종 24)에 졸하니 향년 61세이었다. 공간으로 시호하였다. 아들 철결은 문과에 올라 병조정랑에 이르렀는데 단종 때 사직하고 종제 수찬 조와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화를 입었다. 시류에 편하기보다 꿋꿋이 의를 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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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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