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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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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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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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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성군에서도 나라 잃은 설움을 갖고 우국 충정을 가진자 얼마나 많았으리요만 1910년 함일합병을 전후하여 이필곤, 우용택, 이태직 지사가 있었고 기미년 3.1운동때에는 이양준, 권해운, 박석홍, 이종출 지사가 그 대표적 인물로 추앙되고 있다. 풍운이 감돌던 구한말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로는 이나라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은 모두가 예측하는 일이었다. 단군 성조 이 땅에 개국한지 연면한 4천년이 되도록 허다한 외침과 시련이 있었으나 그 때마다 그런대로 난국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실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이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지는 비극 속에서도 자기의 실리만 생각하는 매국노는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이 때에 이필곤 지사는 지방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워 일승일패 분투하였고 끝내는 그들에게 잡혀 총살을 당하였으며 서울을 가서 우용택 지사는 내부대신 이근택을 찾아 매관매직을 통렬히 추궁하였고 매국너의 수괴 이완용을 죽이려고 찾아갔다가 거사가 실패하고 옥고만 치루었으나 그들은 간담이 서늘하였을 것이다. 이태직 지사는 당시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던 월남 이상재를 찾아 한 깊은 국운을 같이 걱정하고 여러가지로 항일계획을 추진하던 중 그들에게 사전 누설되어 검속되고 말았다.

모진 고문에도 끝내 굴하지 않았으며 철창의 긴 나날을 보내다가 분사하였다. 이양준, 권해운, 이종충 지사는 기미년 안평, 도리원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던 분들로서 안평면민 1,000여명을 동원하여 첫날에는 안평에서, 다음 날에는 도리원 장날에 장꾼과 합세하고 기세가 충천하는 시위를 벌렸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서 목이 터져라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던 그날 왜경은 혼비 백산하였고 즉각 상부에 보고하였다. 군위에서 출동하여온 헌병대와 합세하여 그들은 우리 애국시민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왔다.

피로 물든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여 줄 사람은 지금은 거의 다 저 세상으로 떠났고 도리원, 안평의 산천은 아무 말이 없다. 권해운 지사는 당일에 순국하였고 이양준 지사는 3년 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루다가 병보석으로 나와 순국하였다. 이종출 지사는 1년 6개월의 징역이 있었고 일제 말기에 또다시 검속되었다가 해방과 더불어 풀려났다.

이 외에도 3.1운동때에는 의성읍과 비안면에서 만세 시위가 있었고 비안 출신 박석홍 지사가 검속되어 오랜 옥고를 치루고 나와 해외로 탈출, 풍찬노숙 혁명과업에 헌신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의 포상이 너무 늦었으나마 이필곤, 이용택 지사에게는 건국공로포장이 권해운, 이종출 지사에게는 대통령 표창장이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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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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