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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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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률

활동시기
근대이후
출생지
경북 경산

상세설명

1880년(고종 25) 하양읍에서 태어났다. 1918년 광복회에 가입하였다가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0년 대한민국 상해 임시 정부의 밀령을 받고 입국하여 이동찬, 박용선, 조한명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으던 중 체포되어 7년의 형을 선고받고 원산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옥 후 재차 만주로 망명하여, 1929년 항일 지하조직을 위해 다시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대구지국 총무로 있으면서 지하운동을 벌이던 중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허동상과 함께 궐기를 촉구하여 전단을 살포하고 벽보를 붙였다.

1937년 광복회의 옛 동지 우재룡 등과 지리산에 들어가서 학생과 민중의 봉기를 획책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그 다음해 고향에 돌아와서 대곡 산중에 은신하여 청소년 정신 계도에 주력하다가 해방 3년전인 1942년 12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면서 광복을 위한 투쟁의 56년의 생애를 마쳤다. 1963년 3·1절에 대통령 포장의 건국 공로상이 추서되었고 하양읍 부호동에 의사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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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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