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한 여자의 몸으로 몸에 걸친 옷가지를 빼놓고 가진 것 모두를 송두리째 민족교육을 위한 육영사업에 바친 할머니가 있으니 그가 최송설당여사(崔松雪堂女史)이다. 당시 쌀 한 가마 10원하던 1930년에 32만 1천으로 평가되는 재산을 냉큼 내놓아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송설당의 본관은 화순(和順)이고, 조상은 정주에서 사대부로 살았는데 증조부의 외가집이 홍경래란(洪景來亂)에 가담했다고 그 연과로 외조부는 옥사했고, 조부는 전라도 고부로 귀양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아버지 창환(昌煥)이 고부에서 김천시 문당동으로 옮기매 1855년 그곳에서 무남삼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본래 선비 집안에서 서당 훈장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흉년이라도 들면 끼니를 거르고, 여사가 스물 세살 나던 유명한 병자년 흉년에는 아사지경을 겨우 넘겼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노모와 여동생 둘을 거느려야 할 가장이 된 다음은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졌다. 삯바느질, 삯방아, 콩나물장수 등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 아니 남자가 하는 일까지 해야했다. 또 흉년을 만나 어머니와 동생들이 끼니라도 잇게 하는 길은, 밥술이나 끓이는 집으로 시집가서 친정식구 먹여 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교동 사는 백모라는 집으로 시집을 갔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남편 백씨가 죽었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한편으로 조상이 물려 준 죄를 벗지 못한 채 돌아간 아버지가 늘 한탄하는 것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 온 여사는, 커서 꼭 아버지의 뼈에 사무친 한을 덜어들이려고 어릴 적부터 마음먹어 왔는데 밑바닥이 훤한 생활에서는 더군다나 어림없는 노릇이었다. 돈이 될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낼 생각으로 어모면 장터에 음식점을 차렸다. 이제는 친정 식구를 먹여 살리는 데는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조상의 한을 푸는데는 음식점으로서는 어림도 없었다. 음식점 단골이 된 이씨와 같이 살았는데, 친정에 먹을 것을 남겨 두고 그와 함께 조상 신원(伸寃)의 길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
고관들의 문턱은 높아 하소연 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고종이 총애하는 엄상궁의 친정 동생을 만났다. 엄상궁(嚴尙宮)은 엄비로 책봉되고, 왕실에서는 왕세자를 갈망하고 있어 여사는 백일기도도 드렸다. 왕세자 영친왕(英親王)을 낳으니 그 보모(保姆)가 되었다. 권문세가와 교제가 트이고 막중한 권세 자리에 앉게 되어, 46세 때에 평생의 한이던 조상 면죄의 하명을 고종으로부터 받았다.
정주 조상들의 묘를 수축하고 입석(入石)도 했고, 전국 30본사 사찰에 공양도 하고, 고향에는 김천보통학교, 금릉학원,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 유지비를 기부하고, 1914년 흉년에는 교동의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50석의 벼를 내어 구휼(救恤)했다. 그런가 하면 여운형, 송진우, 백관수 등 애국지사들에게는 독립운동 자금도 대어주었다.
한편으로 김천에서는 민족정신 교육이 독립의 지름길이라 하여 1921년에 인문계 고등보통학교 설립을 서두르고 있으면서 여사에게 손을 뻗쳤으나 학교설립에는 재산이 못 미쳐 거절당했다. 그러나 여사는 내심 학교설립을 목표로 근검절약으로 저축을 계속했다. 9년이 지난 1930년에 비로소 전 재산을 평가하니 32만 1천원이 되었으므로 김천 유지 이한기(李漢騏)를 불러 학교설립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쉽사리 인문계 학교는 허가해 주지 않았다. 인문계는 민족사상의 원천이라 하여 실업학교를 종용하였다. 여사는 인문계가 아니면 학교설립의 참뜻이 없다하여 굽히지 않자 끝내는 인문계인 김천고등보통학교를 허가했다. 김천고보 교사 뒤로 옮겨 살면서 장래 민족의 동량의 될 젊은이를 조석으로 바라봄을 낙으로 삼다가 1939년에 "영원히 사학(私學)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는 유언을 하고 85세를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