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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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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하

도장/중산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예천
출생시기
1898년
시대

상세설명

어려선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영리하더니 자라면서 나라를 되찾고자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4기생으로 1920년 2월에 졸업하고 3·1운동 후의 실의에 빠진 국내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그 해 2월 독립운동 자금과 독립군 모집을 위해 활약하다가 어느 여관에 투숙 중 왜경에 잡힌 바 되니 이것이「무관학교 생도 모집 사건 」이다.

2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하여서는 엄시일, 권세형, 권봉 등의 가명을 쓰면서 경향 각지를 돌며 활약하고 안재홍선생이 용문면 성현동 병암정까지 의사를 찾아와 함께 기거하면서 권 봉 이란 별명을 지어 줄 만큼 안 선생과 여운형 선생등과 친했다.

고향에서는 용문사 명봉사가 집회 장소였고 신간회, 교직원 사건, 소작인 사건, 민중소요 사건, 대동국권회복단 사건 등 수많은 항일사건에 늘 선봉을 선 의사는 옥살이, 예비검속, 출감 투옥으로 항일의 일생이 점철되었다. 1930년대 초 예천읍에서 신문지국장을 가장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고 병 보석되었다가 1936년 39세의 나이로 광복의 영광도 누리지 못한 체 일생을 마친 분이다.

예천군 용문면 하금곡리에서 출생하니 자는 도장(道壯), 호는 중산(重山)이며 본관은 예천이요 해진의 아들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 졸재(拙齋)의 14대손으로 충절과 문한의 가정에서 태어나 광복 일념으로 민지(民志)를 모았었다. 광복 후 1946년 사회장으로 용문면 덕신동에 안장하였고 1977년 12월 독립유공자로 표창되었고 1979년 용문면 하금곡동 공의 고향마을 앞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 중산 권원하 선생기념 비건립취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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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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