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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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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술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의성은 원래 문소(聞韶)로 불리어져 그 영현(領縣)이 진보, 비안, 안정, 단밀의 네 현이었는데 고려초에 안동에 속하던 고구현을 합하여 의성부라 하였다. 대체로 부는 신라의 군현제도에는 없었던 것으로 신라말, 고려초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였는제, 고려 태조 왕건 때의 부는 도합 열개로서 스 중의 하나가 의성부였다. 고려와 후백제의 쟁패(爭覇)에 있어 김홍술이란 이 지방 호족이 왕건에게 귀부하여 전공을 세운데 대한 커다란 은상(恩賞)으로 부로 승격이 실현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고을 이름을 의성이라 함은 고려초에 비로소 일컬어지게 되었다 하니 공신인 그의 순절로 말미암아 이름지어졌으리라고 본다. 그의 벼슬은 감문위 강장군 익찬 공신 의성군(監門衛上將軍翊贊功臣義城君)이다.

당시 그는 태조 왕건의 유화책에 의해 신란 진보성(현 英陽)의 성주로 있다가 922년(태조 5년) 그 영토와 휘하 백성들을 이끌고 자진해서 고려에 귀순, 의성부 성주가 되었다. 그로 부터 일곱 해 뒤인 929년(태조 12년, 신라 敬順王 3년) 기축 7월에 후백제의 견훤이 정예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이 곳 의성부를 공격하여 왔을 때 이를 맞아 힘껏 싸우다 장렬히 전사, 이 비보를 들은 태조는 통곡하여 말하기를 "나의 좌우 팔을 잃은 것과 같다." 하며 슬퍼하였다. 아울러 태조는 성주인 그의 순사를 기념키 위해 '의로운 성' 곧 의성이라 명명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 숙종 때 김석겸 등 읍민들이 현령의 지원을 받아 공을 제향키 위해 사당 충렬사를 이룩하고 그 옆에 순절비도 세워 '신숭겸, 한신에 비유된다'고 빗글에 그 공을 적었다. 현재 그 유적이 의성여자중고등학교 뒤 사당골에 위치해 있고 후손들이 매년 춘향을 치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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