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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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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려

시가/남강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경주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시가(詩可), 호는 남강(南岡), 본관은 경주, 노항(魯巷)연(演)의 아들이다.

일찍, 조 지산(曺芝山). 장 여헌(張旅軒)양선생의 문인(門人)으로서 학행(學行)이 있었음에 낙재(樂齋)서 사원(徐思遠)이 유림(儒林) 종장(宗匠)이라 칭찬하였다.

아버지 노항공(魯巷公)이 경주서천(慶州西川)에서 순절(殉節)함에, 달려가서 흰 명주에 쓰인 성명을 보고 적시중(積屍中)에서 시체(屍體)를 찾아와 자양면(紫陽面) 귀미정등(龜尾丁嶝)에 장사 하였으며, 여묘(廬墓) 삼년을 하였고, 나라에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1602년에 임고서원(臨皐書院)을 도일동(道一洞)에 이건(移健)함에 공이컸다.

묘는 자양면(紫陽面) 원각(元覺) 강대산 축좌(剛大山丑坐)이며 묘비문(墓碑文)은 견산(見山)장 명상(張命相)이 지었다. 후손들이 추모하여 남강정사(南岡精舍)를 황강(黃岡)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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