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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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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문(金就文)

구암(久庵)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선산
출생시기
1506년
출생지
1506년
시대
조선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선산이며 화의군 기(和義君 起)의 후손이다. 진락당(眞樂堂)의 아우로 1506년(중종 원년) 고아면 문성리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취문(就文),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庵)이다. 진락당 선생과 함께 송당 선생에게 수업하였으며 1537년(중종 32년) 문과에 올랐다. 그 후, 강원감사, 부제학 등 여러 관직을 지내는 동안 청렴하고 근검한 관리의 모범을 보여 상감으로부터 많은 상을 받고 모든 관리들의 귀감이 되었다.

청송부사로 있을 때, 퇴계선생이 그 외아들 준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청송부사(靑松府使)는 내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친구이니 너는 조심성 있게 가서 인사를 드리고 길이 비록 험하나 넓은 바다와 어진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나?"라고 했다. 조정에 있을 때, 윤원형(尹元衡)을 물리치라는 상소를 올려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에 내려와 대월재(對越齎)를 짓고 여러 후학을 가르치다가 62세로 조용히 전수를 다하니 상감께서 크게 슬퍼하시고 친히 제문을 지어 신하를 내려 보내 제서를 지내게 하시고 자헌대부, 이조판서, 홍문관 대제학, 성균관사를 추증하고 문간이라는 시호를 내리셨다. 후생이 높은 덕을 추모하여 낙봉서원, 서산사에 배향하고 있으며 문집이 남아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 유교연원록 구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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