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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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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민

성언/우정
활동시기
고려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선생의 자는 성언(誠彦)이요 호는 우정(愚亭)이며 김해인 호군 낙안당 김세중선생의 손자이고 분성군 서천 김응수(盆城君 西川 金應壽)선생의 조카이다. 1558년(명종 13년)에 태어나 영산현(靈山縣)에 자라고 그곳에서 세거하고 있었다.

1592년(선조 25년)에 왜적이 쳐들어와 4월14일에는 부산성(釜山城), 동래성(東萊城)이 연이어 함락되고 일로는 김해(金海), 밀양, 청도, 대구로 해서 북상하고 한편 거창(居昌), 영산(靈山), 창녕(昌寧), 고령(高嶺), 김천(金泉)으로 해서 북상하여 5월2일에는 서울이 함락 되었다.

5월11일 그러니 왜적이 부산에 상륙한지 28일 만이다. 이날 고령군 개진면 양전동에서 송암 김면(松庵 金沔)장군이 의거를 결의하고 창의(倡義) 하였다. 이 때 선생은 영산(靈山)에서 나라가 왜적에게 분탕을 당하고 국토가 짓밟히고 백성들이 당하는 참상을 눈떠고 볼 수 없어 의분에 차 있던 중 고령에서 송암 김면 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그 휘하에 들어갔다.

의병군에 가담한 선생은 6월9일의 개산포(開山浦)대첩(대첩)에서 감히 싸웠다. 우척현(牛脊峴)전투에서도 용감히 분전 하였다. 계속해서 사원동(娑院洞)전투 두곡역전(豆谷驛前)의 전투 사랑암(沙郞巖)전투 등에 역전하였다.
왜적이 1597년(선조 30년)또 쳐들어와 정유재란(丁酉再亂)을 일으키자 홍의 장군 곽재우(紅衣將軍 郭再祐)선생을 중심로 의병군이 창녕(昌寧)에 있는 화왕산성(火旺山城)의 성곽을 수축하여 방어전에 들어 갈 때 선생은 조전장(助戰장)으로 활약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참고문헌:용사일기, 화왕산 동고록, 송암선생실기, 국사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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