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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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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안동 김씨 현감공(縣監公 諱는 之哲)의 24세손이며 김동길(金東吉) 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1894년(高宗 31年 甲午) 수비면 수하동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온후(溫厚)하며 언행(言行)을 삼가고 공손하였으며 어릴 적부터 어버이를 받들어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1920년(庚申) 정월(正月)에 어머니 김씨(金氏)의 병환이 오래되어(宿患) 탕약을 계속 복용하던 중에 갑자기 위중(危重)해지니, 아들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잠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다가 생명이 위급해지자, 도끼로 무명지 약손가락을 끊어 흘러내리는 선혈(鮮血)을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어 마시게 하였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운명(殞命)하였다. 아아 효자의 호천망극(昊天罔極)한 애절통절(哀絶痛絶)함이라니 당시(當時)의 영양문묘(英陽文廟) 및 영양 유도 진흥회(英陽儒道振興會)에서 김 창현(金 昌顯)선생의 천출(天出)의 효성을 표창하였다. 1943년(癸未)에 별세하니 향년 50세이었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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