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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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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

성무/직산
활동시기
근대이후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성무, 호는 직산, 본관은 의성, 동강 우옹의 후손, 철림의 아들로 대가면 칠봉동 사도실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부 국영에게 한학을 배우고 외모는 수려 장대하고 성품은 온후 인자, 지조는 강직하여 불의에 타협할 줄 몰랐다.

1910년 한·일합방의 소식을 듣고 어린 나이로 매국노들을 욕하여 마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림의 독립청원 파리장서운동에 적극 호응하고, 태극기를 만들로 동지들을 모으는 등의 활동으로 동지 배상윤, 백성흠, 서병준, 노기학, 박경하, 김구진 등과 4월 2일(음 3월 2일), 성주시장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를 부르며 만세 시위운동을 벌여 왜경에게 부상을 입고 잡혀 7개월의 옥고를 대구감옥에서 치렀는데 법정에서일본 침략의 부당성과 조국광복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였다. 출옥 후에도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왜경의 모진 고문으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광복 후 53세로 돌아갔으며, 대가면 칠봉동 사도실에 '직산 김창렬 선생 독립유공기녑비' 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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