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관향은 안동이요 김 동순(金 東珣)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1873년(高宗 癸酉) 영양읍 동부동에서 태어났다. 통정대부 궁내부주사(通政大夫宮內部主事)인 직함으로 아버지를 섬김에 효도하고 형제와 종반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1903년(光武 7年 癸卯) 모황(牟荒)에 양곡 수백 섬을 내어 굶주린 향민들의 생명을 구제하였다. 가천정(佳川亭) 중건(重建)에 500량을 헌납하고 중건운(重建韻)의 시를 지어 읊기를 「할아버님 닦으신 옛 터전 숲에 정자 이룬 이날의 감회 깊어라. 높은 메 봉우리마다 옥으로 깎아 세운 듯 흐르는 물은 맑아 구비 구비 거문고 소리. 차가운 달빛 의희한 삼각지면에 맑은 바람 일어 어즈버 백년을 산 듯한 심사(心思). 난간에 의지하여 이미 이룩된 옛 경치를 내다보느니 울울창창 고목 숲이 열 길이 고나!(吾祖藏修舊壑林 亭成此日感懷深 高山削立峯峯玉 流水鳴來曲曲琴 寒月依 三字面 淸風 百年心 憑欄遠溯先着景 古木蒼蒼己十尋)」.
1916년(丙辰)에 별세하니 향년 44세이다.
<參考文獻> 英陽郡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