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선산인 증 참판 김 천길의 아들로 영해부에서 태어났다.
자는 상삼(尙三) 호는 용암(龍岩)이라 하였고 학문은 늦게 익혀 경종 1721년에 무과에 올랐다. 영종 때에 미조항진 우수영에서 선정을 베풀었다. 다시 의금부가 도사 되었을 때 이 인좌(李麟佐)등이 반란을 이르키자 그의 맹장 이 문저(李文著)을 포박하여 임금에게 바쳤다. 양무원종 1등 공신으로 녹훈하였고 3대가 음덕을 입게 하였다.
그의 아들 김 선겸(金善兼)의 자는 달경(達敬) 호는 만귀(晩歸)이며 영종 때 무과에 등과하고 선전어모장이 되었다. 나주괘서의 변인 윤지(尹志)의 난의 잔당을 탐라에서 정벌하고 사천현감에 제수 받고 귀암서원에서 글을 가르치고 선정을 베풀으니 주민들이 덕을 기리기 위하여 동비(銅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