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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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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효징/학사(또는 아헌)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현감 대현(大賢)의 아들로서 1508년 영천군(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에서 출생했다.

17세에 유성룡에게 사사(師事)를 받고 1613년(광해군 5년) 생원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난징(亂徵)을 보고 응시를 포기하고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더욱 학문을 연마하였다.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응시하여 병과(兵科)로 급제하므로서 1634년 선산부서를 역임하다가 1634년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637년(인조 15년) 빈번한 청(淸)나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임시적 재원의 염출을 위해 삼분모회록법(三分耗會錄법)을 제안하여 이를 시행케하고 그후 필요가 없게 되자 1650년(효종 1년) 폐기케 했다. 1647년 부교리, 이어서 효종(孝宗)초에는 사간(司諫) 동부승지(同副承旨), 좌부승지,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서 1662년(현종 3년)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으며 그 뒤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했는데 청신강방(淸愼剛方)하였다.

학문(學問)이 깊고 예학(禮學)에 뛰어나고 문장이 명백(明白)하여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사례문답(四禮問答)과 산중록(山中錄), 변무록(辨誣錄)등을 남기셨다. 만년에는 임천(任川)에 계시면서 후학들의 교육에 정진(精進)하시었는데 그 문하에서 급제(及第)한 성취자(成就者)가 많이 나왔다. 특히 이 고장에 관한 업적으로서는 영주군지를 편찬한 것인데 고려말에서부터 조선중기 까지의 것을 명백간엄(明白間嚴)하게 집성했다. 안동의 물계서원과 영주의 의산서원에 배향했었고, 저술로는 학사집(鶴沙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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