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본관은 경주인으로 직장을당(直長乙唐)의 후예로서 사간(司諫) 치옹(致雍)의 아들이며 호는 돈재(遯齋)이다.
얼굴이 웅장하고 기품이 씩씩하여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 글공부를 하면서 여가를 이용하여 칼쓰기와 활쏘기를 익혔다.
후에 진사가 되어 봉직앙(奉直郞)이 되었으며 임진란이 일어났을 때 배종관(陪從官)으로 선조왕을 의주까지 무사히 모셔드려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고 이덕형(李德馨), 정곤수(鄭崑壽)등과 함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청병(請兵)하는데 큰공을 세웠으나 고국에 돌아온 후 이내 세상을 떠났다.
묘는 쌍림면 산주동에 있으며 성산(星山) 이헌주(李憲柱)가 비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