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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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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기

백춘/병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일선. 농암 선생의 현손이며, 경질공 지경(景質公 之慶)의 아들로 이름은 응기(應箕) 자는 백춘(伯春), 호는 병암(屛庵)이다. 1456년(세조 1년) 도개면 신곡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뛰어나고 품행이 아름다워 남의 모범이 되었으며, 학문과 의를 숭상하고 예를 존중하였다.

1477년(성종 8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5부 판서를 모두 역임하고 1513년(중종 8년) 우의정에서 좌의정으로 나라의 정사를 담당하여 위로 임금님을 잘 모시고 아래로 백성을 자애롭게 보살피어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도 않고 재물을 탐내는 일이 없어 청렴 결백하여 모든 일에 모범을 보이셨으니,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진사람"이라고 하였다. 임금께서도 선생의 탁월한 덕행과 훌륭한 정사에 감동하여 친히 "동방부자(東方夫子)"란 글씨를 내려 주셨으니, 덕행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욱 성리학(性理學)을 깊히 연구하여 성력(星曆)과 음률(音律)에 까지 깨닫지 못한 것이 없었다고 하며, 집에 있을 때는 호화로운 가구를 쓰지 아니하고 벼슬에 있을 때는 선공후사 정신으로 청백한 지조를 후세에 남겼다. 선생의 이러한 충군애국의 일념은 늙을 때까지 쇠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부음을 듣고 나라에서는 조회를 철폐하고 상감을 비롯하여 공경사대부와 국민이 모두 슬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시호를 문대(文戴)라고 내리셨다. 도개면 궁기동에 묘소가 있고 송산서원(松山書院)에 향사하여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 · 국조인물록, 전고대방 · 조선명인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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