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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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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옹

숙부/동강,직봉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숙부, 호는 동강 또는 직봉, 본관은 의성, 칠봉 김희삼의 아들로 대가면 칠봉동에서 태어났다. 조식, 이황의 제자로 1576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를 지내고 수찬, 응교를 거쳐 1573년(선조 6년), 사가호당하고 이로부터 전적, 교리, 직제학 등을 역임. 1583년(선조 16년) 삼사(대사헌, 대사간, 대사성), 양관(홍문관, 성균관), 제학을 거쳐 예조, 이조, 형조의 참판을 지냈다.

1587년(선조 20년), 안동부사로 나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일으키는 것을 행정의 근본으로 삼아 안동부민이 그 덕을 사모하여 잊지 않기 위해 비를 세웠다. 1589년 기축옥사(정여립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회령으로 유배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풀렸다. 1592년, 임진왜란에 귀양갔던 회령에서 선조임금이 몽진한 의주로 달려가 부호군, 병조참판이 되어 왜적을 막기 위한 방비책으로 비어기무칠조를 건의했으며, 한성부좌윤, 대사성, 대사헌을 지냈다. 대사성으로 있을 때 성학육잠, 존심양성잠 즉 학문을 하는 데 경계할 잠언과 마음을 수양하는 내용의 책을 지었다.

강직한 성품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함에 빠진 류성룡 같은 충신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1599년) 1602년 교정청당상 및 동지경연사가 되고 이어 부제학, 이조참판, 대사성에까지 이르렀다. 돌아간 뒤 호공신서으로, 이조판서, 대제학에 추증되고 문정이란 시호를 내렸다. 성주의 청천서원, 회연서원, 회령의 오산서원, 청주의 봉계서원, 경성의 함지서원, 종성의 동강사에 제향되었으며, 대가면 옥화동에 신도비와 무덤이 있다. 저서로는 속강목, 동강집, 경연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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