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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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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

언홍/노항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언홍 호는 노항, 본관은 경주, 숭인전참봉 응정의 아들이다. 타고난 천품이 영특하고 뛰어나서 보통 아이와는 같지 않았다. 차차 자라남에 글 읽음을 좋아하여 경서와 역사 및 제자백가의 글을 널리 공부하여 옳은 의리를 닦음에 힘썼다. 선조 25년 임진에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함에 임금의 수레가 서울을 떠나 딴 곳으로 피난함에 공이 분발하여 의병을 일으켜서 충과 의로써 격려하고 방략으로 인도함에 영천 복성에 공을 세우고, 다시 자인적을 토평하여, 장차 동도경주로 달려 가려할 때 말하기를
"적이 죽지 않으면 내가 반드시 죽으리라"하고,

흰 명주에 성명을 써서 허리 속에 띄고 갔다. 서천에 이르러 서로 앞장 서기를 다투니 군사의 의기가 크게 떨쳐 단숨에 적을 무찌를 판인데 뜻밖에도 병사 박진이 군률을 잃음에 적이 이를 틈타 공격해 왔다. 이에 의병들이 적의 칼날을 무릅쓰고 육박전을하다가 세궁역진한지라, 공은 17읜사로 더불어 장열하게 순절하니 이날이 8월 21일이다. 아들 취려가 공의 순절했음을 듣고 달려가 적시중에서 흰 명주에 쓰인 성명에 의하여 시체를 찾아와 자양면귀미 정등 미좌에 장사하였다.

초유사 학봉 김선생이 이일을 보고함에 선조께서 아름답게 여겨 선무랑 한성부판관을 증직하였다. 그 후 유림에서 고천서원에 향사지내며 또 자손들이 부조묘에 향사지내고 있다. 묘비문은 의금부도사 김도화가 지었고, 신도비문은 우인 조규철이 지었으며, 묘하에 원묘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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