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김해 김씨(金海金氏) 절효공(節孝公) 극일(克一)의 후손인데 무신란 때에 개령 아관(開寧亞官)으로 있었다. 관군과 권속(眷屬)을 비롯 의병군 수백 명을 모아 우두령(牛頭嶺)으로 나아가 적괴수 이웅보(李熊輔, 이인좌의 아우)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용전분투하다가 전사했다. 아들 만의(萬儀)가 아버지의 전사를 보고 분격하여 적진으로 돌진해 분투다가 그도 또 전사했다.
충신의 아들은 죽음으로써 효를 다했다고 하면서 김산 땅에 현대판 비녕자(非寧子:신라 김유신의 부하로 백제가 이곳 김산을 침범하여 군세가 강한지라 비녕자가 적중에 뛰어 들었다가 전사하니 그의 아들 또한 적진으로 말을 달려 싸우다가 전사했다-삼한시대 전적지 참조)가 났다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고종 때에 포정(褒旌)하고 감찰(監察)을 증직했다가 뒤에 다시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제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