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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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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댁의이여사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경주(慶州)이씨인 이 수영(李 守榮)선생의 딸로서 1880년(高宗 17年 庚辰)석보면 택전동(宅田洞)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께 효순(孝順)하고 남매간에 우애하니 어른들의 귀애함에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16세에 석보면 논실(畓谷洞)에 거주하는 김해 김씨(金 和培)에게 출가하였다. 신부는 시부모께 아침저녁 문안드림과 의복지절(衣服之節)과 반상공궤(飯床供饋)에 효성이 지극하고 남편에게 대하여는 귀한 손님(貴客)에게 대하듯 공경(恭敬)하며 깊은 애정으로 섬기니 이웃과 시댁 친척간에 효부를 흠모(欽慕)하고 기리는 소리가 자자하였다.

불행히 19세에 남편이 중병에 걸려 이에 구료(救療)하기를 환자(患者)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고, 대변을 맛보아 가며 약을 쓰고 목욕제계(沐浴齊戒)하여 한밤중에 하늘에 빌기를 「남편의 무거운 병을 이 몸에게 대신(代身) 지워주시고 남편의 병을 낫게 하여 주소서」하고 눈물어린 간절한 애원(哀願)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정명(定命)인지 백약이 무효라 상부(喪夫)하니 갓스물 청상과부(靑孀寡婦)는 천지가 무너지듯 애통(哀痛)하여 따라죽고 싶었으나 유복자(遺腹子)가 태중에 있는지라 마음을 가다듬어 장계를 치른 후에 시부모 봉양하기를 남편 생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만삭(滿朔)이 되어 생남 하니 자애(慈愛)와 훈계(訓戒)로써 기르며,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儉素)하여 치산(治産)하기를 푼돈과 되곡식(升穀)을 날(日)로 모으고 달(月)로 저축해서 가도(家道)가 넉넉해지며,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워 시댁을 보가(保家)하니 어찌 효열(孝烈)을 겸한 현부인(賢夫人)이라 아니하리요. 1952년(壬辰)에 별세하니 향년 73세이다. 공부자성적도속수오륜행실중간소(孔夫子聖蹟圖續修五倫行實重刊所)에서 효열 이씨(孝烈 李氏)를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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