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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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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

활동시기
삼국시대

상세설명

신라 신무왕 때의 공신(功臣)으로 자는 위흔(魏昕). 태종 무열왕의 세손이며 828년(흥덕왕3)에 고성태수(固城太守)로 지방관이 되고 계속하여 중원대윤(中原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 등을 지냈다. 흥덕왕이 죽은 후 아들이 없으므로 왕의 당제(堂弟) 균정(均貞)과 헌정(憲貞)의 아들 김제륭(金悌隆-僖康王)이 서로 왕위계승의 싸움을 할 때 김양은 균정의 편을 들어 싸우다가 실패하여 균정은 피살되고 김양은 산야에 숨었다.

837년(희강왕2)에 균정의 아들 김우징(金祐徵)이 궁복(弓福)과 결탁하여 희강왕을 치려고 할 때 김양이 같이 공모하였고 838년(민애왕1)에는 서울로 쳐들어와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임금으로 내세우니 이가 신무왕이다. 신무왕이 불과 수개월 후에 죽자 김양은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을 내세웠다. 김양이 50세로 죽자 임금은 그에게 대각간(大角干)을 추증하고 태종 능렬(陵列)에 배장(陪葬하였다. 지금 태종릉 앞에 그의 무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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