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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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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김시습(1435∼1493년)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며 문인이다. 본관은 강릉, 호는 매월당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이미 다섯 살 때 신동이라는 소문이 날 만큼 타고난 재주가 뛰어났다. 21세에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태워버린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전국을 유랑하였다. 31세부터 37세까지 경주 금오산에 칩거하였는데, 그가 머물렀던 곳이 용장사이다. 이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충청도 만수산 무량사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현존 자료로는 시문집인 「매월당집」과 단편소설집 「금오신화」가 있다. 「금오신화」는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인정되고 있는데 그중 다섯 편이 전할뿐 완본은 알 수가 없다. 다섯 권 중 「만복사저포기」는 노총각 양생이 죽은 처녀의 혼백과 연애하는 이야기이며, 「이생규장전」역시 이런 사랑을 다루었다.

「남연부주지」,「용궁부연록」,「취유부벽정기」도 모두 현실을 벗어난 또다른 세계를 무대로 하였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은 귀신이나 염라왕, 용왕 같은 비현실적인 소재를 끌어들였으며, 중국이 아닌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우리 나라 사람의 감정과 풍속을 묘사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결말에서 주인공들이 모두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그릇된 세계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이고 있으며, 시를 많이 삽입하여 인물의 심리와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 특징이다.

이 작품이 창작된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금오산에 머물렀던 30대의 작품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작가의식과 내용과 기교에 있어서 훌륭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소설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쓸 때만 하더라도 금오산(남산) 일대에는 보살들의 목탁소리, 염불소리, 경 읽는 소리와 자연이 한데 어울렸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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