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김성옥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김성옥(金聲玉)은 김령(金寧) 김씨이며 단종때 사욱신과 함께 순절(殉節)한 김문기(金文起)선생의 12세 손이다. 조선 말엽인 1816년에 산성면 삼산동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온후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릴 때부터 효성이 많았었다. 여덟 살 때의 일이다. 하루는 여러 이웃 아이들과 함께 배를 사먹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맛있게 먹고 있었으나 성옥은 먹지 않고 쥐고 있었다. 배장수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왜 먹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겠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배장수가 이 어린아이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여 몇 개의 배를 더 주었더니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것을 어머니께 갖다 드려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아홉 살 때부터 이웃 마을에 사는 선비를 찾아가 글을 배우게 되었는데 어찌나 부지런한지 눈비를 가리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가 배웠으므로 글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어머님께서 병환으로 눕게되자 글공부를 중단하고 어린 몸으로 가사를 돌보며 어머님의 병구원(病救援)을 해야 했다. 열 한 살 때 모친상을 당하여 3년을 하루 같이 시묘를 하며 아버지를 봉양했다.

22세 때에 전주 이씨를 아내로 맞아 들여 늙으신 아버지를 내외가 함께 극진히 모시던 중 병환으로 눕게 되었는데 꿩고기 국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곧 꿩을 구하러 나갔으나 좀처럼 구할 도리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대성통곡하였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홀연히 소리개 한 마리가 꿩을 차고 날아가다가 마당에 떨어뜨렸다. 이는 필시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다 생각하고 곧 국을 끓여 드렸더니 아버지의 병환이 씻은 듯이 쾌차하였다고 한다.

1847년 여름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졌는데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집안의 물건들을 이고 지고 안절부절이었는데 성옥은 가산을 돌보지 않고 아버지께 삿갓을 씌워드려 업고 산 위로 비와 물을 피하였다. 비가 그친 다음 마을로 내려와 보니 다른 집들은 물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성옥의 집과 가재도구만은 하나도 허물어짐이 없이 그대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지극한 효성의 소치라고 하며 칭찬하였다. 이 소문이 널리 퍼져 관가에서 그에게 많은 상을 내려 효행을 표창하였다.

그는 1875년 9월 향년 60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나니 군내의 여러 사람들이 그의 효행을 조정(朝廷)에 올렸는데 다음 해인 1876년 고종황제께서 교지(敎旨)를 내려 증직(贈職)하시었다. 산성면 백학동에는 그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이 지금도 남아있고 후손들이 백원재(百源齋)를 세워 그를 추모하고 있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행복콜센터 :
 15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