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효자 김성민(金成敏)은 1644년(인조 22년)생으로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익삼(益三), 호는 금양(錦陽)이라 하였다. 효령현 나실(현 효령면 장군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슬기롭고 총명하였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여 그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 20세 되던 때 아버지가 이름 모를 병으로 몸져누웠다. 효성이 지극한 성민은 아버지의 약을 구하기 위해 용하다는 명의(名醫)는 다 찾았으나 약은 많아도 차도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병을 낫게 할 생각은 말고 농사나 지으며 임종을 기다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농사 폐농(廢農)하고 살림만 버릴 뿐이다."하고 말렸으나 성민의 열성은 요지부동이었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겠지…"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 약초를 찾아 눈 덮인 산을 수 십리씩 들어간 성민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의원들이 절망적이라던 아버지의 병환은 더 약화되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성민의 열의와 노력은 더 뜨거워 갔다.
어느 날 아버지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셨다. 꿩을 잡아 보겠다고 나선 성민에게 쉽사리 잡힐 리가 없었다. 눈 덮인 산을 헤매던 나흘째 되던 날 뜻밖에도 꿩 한 마리가 집안에 날아 들어왔다. 뛸 듯이 기뻐한 성민은 이 꿩을 붙잡아 하느님께 감사하며 정성 들여 장만하여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한겨울에 잉어라니 당치도 않는 얘기였으나 효성이 지극한 성민은 또 잉어를 잡으러 마을 앞 용수 못에 갔다. 물이 깊어 여름에는 많은 이어가 있었으나 얼음이 꽁꽁 얼어 붙었는데 어떻게 잉어를 잡는단 말인가?
성민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 얼음 위에 꿇어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이 꼭 이루어지게 하시어 불효자 천추의 한이 되지 않게 해주소서…"얼마나 지났을까? 기도하던 눈을 떠보니 꽁꽁 얼어붙은 구명의 얼음이 깨어지고 그 구멍으로 팔뚝만한 잉어가 뛰어 올라와 퍼덕거리고 있지 않은가? 반가움에 깜짝 놀란 김성민은 그 잉어를 부둥켜안고 집으로 달려와 잉어를 고아 며칠을 두고 아버지께 드렸다.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에 감천하여 꿩과 잉어를 보내어 주신 것이라 하며 그 인근 사람들이 효자각을 지어 그의 효성을 길이 모범되게 하였다. 효령면 장군동 뒷산에는 효자 청도 김성민의 백원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