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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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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유운/송정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공은 김해인 안경공 영정의 후예다. 인조에 무과에 급제, 자는 유운, 호는 송정이었다. 1637년(인조 15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우 대붕(자는 운거, 호는 호은과 4촌 아우 기원, 진원을 비롯 뜻이 맞는 백여인을 모아 의병으로서 남한산성을 향해 가던 중, 추풍령에서 적을 만나 접전, 적 괴수 2명을 베고 나머지를 항복받았다. 이 싸움에서 마우 대붕의 공이 컸다고 한다. 쌍령에 도착했을 때는 성이 이미 함락된 후였다. <아마 쌍령진이 함락된 1637년(인조 15년) 1월 4일이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전사자와 시체를 찾는 가족들의 아우성을 보고 공등은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죽으려 나선 길, 살아서 돌아가랴!"
형제들과 창의군은 기꺼이 죽기로 결의하였다. 적진을 향해 돌격하니 화살이 비오듯했다. 죽기를 각오한 형제 의병들 앞에 오랑캐의 괴수 2명을 비롯 20여수를 목베고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일실 사충(한 집안에 네 충신)이 난 일이 세상에 그리 흔할 것인가, 명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구국일념으로 목숨을 기꺼이 바친 충신들의 넋은 향토민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다. 공의 가정에서는 이들의 넋을 불러 장례를 지냈으며 나라에서는 그 충성을 기려 큰형 대홍에게는 병조참의를 증직하고 이들 가정에 도에서도 포상한 바 있다. 대덕면 관덕촌에 있는 만취정은 대홍· 대붕의 장구지소로 계운 김낙현 찬의 양송이 있고 운창 박성양 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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