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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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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활동시기
삼국시대

상세설명

불국사 및 석굴암을 창건한 대신이다. 중시(中侍) 김문량의 아들로 700년(효소왕 9)에 태어났다. 전생이 경주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어머니는 경조(慶祖)이다. 집이 가난하여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와 고용살이로 얻은 밭 몇 이랑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때 스님 점개(漸開)가 흥륜사에 육륜회(六輪會) 법회를 베풀기 위해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하기를 권하자 복안이 베 50필을 바쳤다. 이에 점개가 '널리 베풀기를 좋아하니 천신이 늘 보호하여 하나를 보시하면 그의 만 배를 얻게 하고 안락과 장수를 누리게 할 것이다'라고 축원했다.

어린 그는 이 말을 듣고 '좋은 일을 한 것이 없어 자신의 집이 가난한 것'이라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청하여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점개에게 시주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그가 죽고 김문량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745년(경덕왕 4) 중시를 거쳐 49세에 대광보국승록대부(大匡輔國崇錄大夫)에 이르렀다. 하루는 토함산으로 사냥을 나가 곰 한 마리를 잡은 뒤, 양심의 가책으로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곰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으로 웅수사(熊壽寺 ; 또는 長壽寺)라 했다.

751년(경덕왕 10) 관직을 사퇴하고, 전생 부모의 명복과 현세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고, 나라의 평안을 위하여 경주에 불국사와 석불사(석굴암)의 건립을 발원했다. 그는 절의 설계 및 건축 전반에 걸쳐 관여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조정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또 다보탑과 무영탑을 조성했으며, 백운교(白雲橋)·연화교(連華橋)·사성교(四城橋)·사미교(沙彌橋)·도살교(到薩橋)·팔도교(八道橋) 등 13개의 다리를 놓았다.

일설에는 그의 생전에 불국사와 석불사가 완성되어 스님 신림(神林)과 표훈(表訓)을 청하여 머물게 했다고도 한다. 불국사의 사탑 및 전당과 석불사는 세계적인 걸작이다. 774년(혜공왕 10), 나이 75세로 일생을 마쳤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김대성(고유섭, 조선명인), 석굴암의 창건과 연혁(황수영, 역사교육8), 김대성(황수영, 한국의 인간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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