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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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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늑

희옥/백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1540년(중종35) 영천군(榮川郡:현 영주시 가흥동)에서 출생하였는데 문절공 담(淡)의 현손(玄孫)이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76년(선조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홍문관(弘文館), 사헌부(司憲府)등의 여러 청환직(淸宦直)을 거쳐 1584년(선조17) 영월 군수(寧月郡守)를 지냈으며, 그후 교리(校理)를 거쳐 1592년(선조25)에 형조참의(刑曹參議)가 되었다.

이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영남 안집사(안집사)로 봉명(奉命)받아 영남에 내려오니 수령(守令)들은 숨어 버렸고, 백성들이 와해(瓦解)해 있기 때문에 초모문(招募文)을 지어 충의(忠義)로서 격문(檄文)하였더니 비로소 여러 고을에서 조정(朝廷)의 영(令)이 내렸음을 알고 각 곳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났다고 한다.

1610년(광해군2)에 대북(大北)의 영수(領首) 정인홍(鄭仁弘)이 정권(政權)을 잡기 위해 회제(晦齊) 이언적(李彦迪)과 퇴계 이황을 헐뜯었으나 그가 상계(上啓)를 올려 진정하므로서 득신(得伸)하였고, 조선조 5현(五賢)인 김굉필(金宏弼),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여러번 상계하여 문묘(文廟)에 종배(從配)토록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후 1612년(광해군4)에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사건(誣獄事件)에 억울하게 연루(連累)되어 강릉으로 유배되었으나 이항복, 이덕형, 심희수등의 변호로 무사하게 되어 관직을 삭직(削職)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후에 직첩(職牒)을 다시 환수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향년77세로 1616년(광해군8)에 졸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민절공(敏節公)이며 영무의 구강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백암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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