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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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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

석천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536년
시대

상세설명

임진년 1592년 5월에 정 경세, 이 전, 이 준, 송 량, 김 사종 등 상주의 여러 선비가 김 각을 대장으로 추대하여 왜적에게 항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 공을 치하하여 진사(進士)인 그에게 사온서주부(종 6품직)라는 벼슬을 내렸다.

"지난해 오월에 의병을 일으킨 일은 한 사람이 한 것도 아니며 주모자가 따로 있지 아니하온데 이름이 잘못 아뢰어져 신에게 사온서주부의 직책을 내리시니 무슨 공이 있다고 이를 감당하겠나이까? 비 옵건데 전하는 특별히 신의 직을 거두시어 공적인 일과사사로운 일이 헛되이 주고 헛되이 받는 일이 없도록 하옵소서. 즉시 이러한 말씀을 아룀이 마땅한 일이오나 급한 것은 왜적을 쳐서 무찌르는 한 가지 일이옵고 구구하게 피함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지금에야 아뢰옵니다.

상과 벌이 분명해야 착한 일은 권하고 악한 일은 징계하여야 하옵니다. 그러한 후에서야 일이 잘 풀리는 것이온즉 상과 벌은 임금님이 힘쓰실 일이며 꼭 삼가야 할 일이옵니다. 지금의 상벌은 신이 감히 분수에 넘치게 함부로 의논할 것이 못되오나 진중(陣中)에 있는 사람을 추천한다면 병사를 모으고 군량을 주선하는데는 이준(李俊)만한 사람이 없사옵고 험난한 곳에 왜적을 쫓아서 쳐부수는 데는 정기룡(鄭紀龍)만한 사람이 없사옵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사람도 총칼 속에 나다니며 한 사람 혹은 열 사람씩이나 왜적의 목을 베어오며 군량을 산 섬 두 섬 혹은 여나무섬 씩이나 거두어 와서 오래 버틸수 있게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임금님의 상을 받지 아니하고 있사온즉 신이 생각컨데 나라의 상과 벌줌이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느껴지옵니다. 원하옵건데, 임금님께서 아무 능력없는 신에게 주신 상을 거두어 이러한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그는 상을 사양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을 주도록 상감께 이와같이 간곡히 진정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상주군 외남면 출생으로(1536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해 오월에 진사로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조직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활동은 상주, 보은, 김산, 선산 등 한 지역에만 그치지 아니하였다. 진주 판관 김 시민(金時敏)과 전 군수 김 대명(金大鳴)등과 병사를 모아서 고성,진해의 왜적을 막아내고, 김 시민, 전 병사 조 대곤(曺大坤), 사천 현감(四川縣監) 정 득열(鄭得悅) 등과 함께 사천의 왜적을 습격하였다.

그 후에 선조 임금께서 경상도에 선비와 평민에게 글을 내리시니 상주 사람을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상주는 왜적이 오는 길목에 있어 의병을 일으키는 선비가 이어서 일어나 충과의로서 백성을 깨우쳐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밝게 하여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왜적을 따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한 사람도 왜적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조 임금께서는 그에게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 일등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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