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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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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진

동언/아맹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597년(선조30)
출생지
영천 봉향리
시대

상세설명

자(字)는 동언(東彦)이요 호(號)는 아맹(啞盲)이니 1597년(선조30)에 사복제 권정(思復齋 權定)의 9세손으로 영천 봉향리에서 출생하였다. 학사 김응조(鶴沙 金應祖)의 문하생으로 1624년(인조1)에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동지를 규합하여 창의를 하였고, 1635년(인조13)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이듬해인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에 강개(慷慨)하여 의병(義兵)을 일으켜 충복 청풍에 이르자 불행하게도 화의(和議)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통곡귀가(痛哭歸家)하였다. 그리하여 과거의 뜻도 끊고 "세사(世事)를 말하지 않으며, 천일을 보지 않겠다. (不言世事口之啞 不見天日目之盲)"하며 스스로 호를 아맹이라 부르며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다.

그 후 학사 김응조가 조정(朝廷)에 천거(薦擧)하고 군수 이상언(郡守 李尙彦)이 또 천거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종시(終始) 두문(杜門)하다가 1683년(숙종9)에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후에 영주 구호서원(鷗湖書院)에 배향(配享)하였고, 별묘(別廟)가 장수면 성곡리에 있어 춘추로 향사를 지내며, 구성산에 그의 덕(德)을 기리는 정자 대은정(大隱亭)이 있다. 문집(文集)으로 아맹집(啞盲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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