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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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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기

희숙/은재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공은 안동인, 충신 응성(應聖)의 아우로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나 자를 회숙(會叔), 호를 은재(隱齋)라 했다. 뛰어난 용모와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문장에 뛰어나 향리에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일찍이 과거에의 뜻을 버리고 조용히 지낼 것을 생각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효는 한 가지라 했거니와 형이 보국에 창의한 마당에 나는 가문을 보존하리라."
하고, 창의한 형과 작별, 청송(靑松)으로 노부모를 모시고 피난길에 나섰다. 하루는 왜직에서 잡힌 바 되었을 때
"부모가 없는 자식은 없다. 너희에게 늙은 부모가 있어 나처럼 붙잡혔다면 어찌할 것이냐?"
고 왜적에게 사리로 따지자, 적이 그 효심에 감동되어 무사히 풀려난 적도 있었다 한다.

난리가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오니 충효지문(忠孝之門)으로 일컬어졌고 공은 또한 향안(鄕案)을 닦았으며 세상에 종적을 숨길 뜻으로 호를 은재라 했다 한다. 공의 사후 문집(文集)이 있고 묘소는 조마면 재궁리에 있고 묘갈은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의 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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