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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선생의 휘는 희주(喜珠)이요 자는 춘약(春若)이며 호는 만초(晩樵)로 본관은 고령(高靈)이다.고양부원군 김남득(高陽府院君 金南得)선생의 후예이다. 선생은 1869년(고종 6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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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
나만 |
공은 수성군(壽城君) 위(緯)의 손자로 호는 야은(野隱)이며 벼슬은 고려말에 서운관 도정(書雲觀都正)이었다. 고려가 이미 망할 조짐이 짙자 불사이군(不事二君)에의 절의를 안고 김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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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봉린 |
공은 수성인(壽城人) 나윤행(羅允行)의 증손으로 개령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지니고 자랐으며 장수의 위풍이 있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는데 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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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 |
화상(和尙)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이다. 속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로서 선관서령(膳官署令) 서구(瑞具)의 아들로 13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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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준(羅以俊) |
나주인 세겸(世謙)의 손(孫)이다. 호는 매음(梅陰)이며 1636년(인조 13년)에 문과에 올라 승지(承旨)로 있으면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성균관 학생들은 모두 피난을 갔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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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
남건 |
자는 성행(聖行)이요 호는 노헌(魯軒)이니, 영의공(英毅公)의 후예인 영양군(英陽君 麗朝 重大匡都僉議贊成事)의 22세손이며, 감찰어사(監察御使)인 송정(松亭)공의 14세손이요 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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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지 |
관향은 영양이며 판서 휘주의 현손이다. 세조조 관은 호군 창설하여 직접 이끌고 나갔다. 성품이 돈후지풍하고 영가에 사적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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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훈 |
영양인 판관 의록(義祿)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응화(應和) 호는 난고(蘭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자라나면서 경사(經史)에 힘써 공부하였다.
임진 왜란때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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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명 |
해운당 남계명의 의분 중랑장 영번의 손자로 효성이 지극하고 25세에 진사가 되었다. 점필제 김종직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성종조에 이천교수로 계실 때 요승학조가 국모의 은총을 업고 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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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신 |
영양인(英陽人) 전한(典翰) 세주(世周)의 손이며 호는 둔와(遯窩)라 했으며 선조(宣祖)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해서 유일제(惟一齊) 김 언기(金彦璣) 밑에서 배우다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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