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 |
이양덕 |
효자 자를 여호 조선 정조 때 효령면 장군동에서 살고 있었다. 자질이 준수하고 효행이 지극하여 부친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팔공산에서 약초를 캐어 드렸다. 산삼이 좋다는 말을 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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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
이억 |
우계인(羽溪人)인데, 판중추 사성(判中樞 思誠)의 아들로서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고려말에는 유장(儒將)으로서 많은 활약과 전공을 세웠다. 특히 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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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
이언영(李彦英) |
조선 인조(仁祖)때 명신(名臣)으로 자는 군현(君顯) 호는 완정(浣亭) 본관은 벽진(碧珍), 좌랑(佐郞), 등림(鄧林)의 아들로 1568년 칠곡군 왜관읍 석전동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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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
이언영(李彦英) |
이언영(李彦英)
조선조의 인조(仁祖)때 명신(名臣)으로 자는 군현(君顯) 호는 완정(浣亭) 본관은 벽진(碧珍), 좌랑(佐郞), 등림(鄧林)의 아들로 1568년 칠곡군 왜관읍 석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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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
이언의 |
본관은 성주, 장경의 후손, 근동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지혜롭고 힘이 세었으며 글에도 능했다. 부모상에 여묘생활 6년에 정성을 다했다. 1636년, 병자호란에 의병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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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
이언의 |
공은 성주 이씨 도은 이숭인의 후예로 1598(선조 31)년 7월 16일 감천면 도평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윤칙으로 천성이 총명하고 효성스러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슬픔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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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 |
이언적 |
외가인 경주 양동의 월성 손씨 종가에서 태어났다. 본관 여주. 호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 자 복고(復古). 이름 적. 시호 문원 (文元). 원래 이름은 적(迪)이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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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 |
이언춘 |
선조 25년 4월 14일 왜병이 부산에 상륙해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경주에 들어왔다.
이번의 왜구는 수십만의 대군이라는 소문에 백성들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이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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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 |
이여랑 |
공은 성산인으로 1380(고려 우왕)년 생원시에 장원을 하고 같은 해에 문과 급제, 벼슬이 사간원 좌정언에 이르렀다.
우왕은 즉위한 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놀이에만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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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
이여림 |
공은 강양군(江陽君) 요(搖)의 후예로 자는 경망(景望), 호는 눌재(訥齋)였다. 선조조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학문이 순수하고 깊었으나 자연에 묻혀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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