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세시풍속

제목
혼례 / 해당월 : 1
작성자
관리자
내용
혼례란, 젊은 남녀가 하나로 합쳐, 위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아래로는 자손을 후세에 존속시켜 조상의 대를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한 혼인의 예이다(禮記). 그래서 예로부터 혼인을 인륜도덕의 시원이며 만복의 근원이라 했으며, [중용]에도, 군자의 도리는 부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혼인은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의 하나이다. 

첫째,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성년이 되면 먹고 입고 자는 것과 다름없는 성의 욕망을 갖게 되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짝을 이루고 일부일처의 혼인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둘째, 고유한 정신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결합하여 부부가 서로 공경하고 서로 참아 가는 도리를 지켜 평생동안 고락을 같이 하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가정이란 집단을 이루어 하나의 공동사회 생활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의 첫 바탕이 부부가 이루는 가정이며, 여기서 자녀를 낳아 기르고 다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넷째, 혼인은 사회제도에 따른 것이다. 제도란, 관습·도덕·법률 등 사회의 종합적인 규범을 말한다. 규범은 우리의 사상이나 행실이 일정한 이상의 모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칙이며 원리이다. 그러므로 혼인은 결국 이러한 제도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혼인이 가정이라는 공동생활을 통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측면에서 혼례는 인간예절 중에 가장 중대한 의식의 하나로 예로부터 동성동본 혼인을 금하고 혼인에 재물을 논하지 않으며 六禮를 갖추어 혼례를 행하는 것이라 했다.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얼음이 녹으면 農桑(농상)이 시작되고, 혼례를 치르면 사람의 일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로 보아 혼인제도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 혼인제도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부여에서는 일부일처제였고, 옥저에서는 돈을 받고 혼인하는 매매혼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신부의 집 뒤뜰에 參屋(서옥)을 짓고 사위가 거처하다가 자식을 낳아 큰 다음에 비로소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한다. 이는 모계 씨족시대의 유풍으로 보인다.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유교에 따라 혼례를 당사자끼리의 결합이라기보다 신랑·신부 두 집안의 맺음이라는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 후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신식 혼례가 유행하고 전통적인 혼인의식도 크게 간소화되어 지금은 신·구 절충식으로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첨부파일이 다운로드 되지 않을 때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행복콜센터 :
 15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