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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자료실

제목
아이들 심리 로또로 엿보기
  • 등록일2003-02-26 10:42:46
  • 작성자 관리자
내용

손미숙 / 풍문여고 교사
 
개학 후 2학년 이과반 문학 첫 시간, 30분쯤 지나니 아이들 자세가 흐트러지며 집중력에 한계가 오는 것이 느껴진다. 

“1부터 45까지 숫자를 여섯 개 써 보세요.” 
“로또예요?” 
“그리고 복권이 당첨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한번 써봐요. 아주 구체적으로.” 

5분 뒤, 호명을 한 후 발표를 하게 했는데, 처음 지명을 받은 학생이 그런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조차 싫단다. 이후 지명된 네 명의 학생 역시 줄줄이 같은 대답이다. 교사가 덧붙일 말을 미리 예상하고 생각해낸 답변일 수도 있고, 속내를 드러내기 싫다는 뜻일 수도 있으며, 하라는 것 안 하고 있다가 둘러대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대견스런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당첨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는 과학 소녀들이니 더 잘 알 것이고, 가볍게 드러내는 욕망을 잘 들여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도에서 해보자는 거니까 한 번 얘기해 보도록 합시다” 라는 말로 유도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들 중엔 개학 전날 복권 당첨돼서 출근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분, 당첨금을 타면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분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어르니 늘 수업에 적극적인 진주가 나선다. 

“대전의 땅을 몽땅 사고요. 개인 전용 체육관을 짓고요. 사고 싶은 문제집을 마음껏 사고 싶어요.” 

대전 땅값에 대한 정보는 어두워도 만만치 않은 문제집 값은 피부에 와 닿는 안타까움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싸했다. 그 후에 나오는 얘기들을 분류해 보니,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역시 예상대로 집 사고, 차 사고, 여행가고, 기부하고 이 네 가지다. 그것 빼고 얘기해 보자니까 지칠 때까지 물건을 사보겠다는 학생이 두 명, 아예 백화점 주인이 되겠다는 학생이 두 명이다. 얼마나 사고 싶은 것이 많겠는가? 넘치는 소유욕을 드러내는 답변들은 실컷 소유해 오히려 소유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몸부림은 아닐까? 

부모님께 찜질방을 차려드리겠다는 학생과 돈 없는 아이들을 위한 중고등학교를 짓고 싶다는 학생, 기상청에 돈을 기부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한편 집에 남아있는 빚을 다 갚겠다는 학생 등 다 나름의 개인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아무렇게나 적은 숫자 여섯 개도 자신의 삶과 관련 있는, 그러나 무의식에 묻혀 있는 상징적인 숫자이리라. 그리고 그 삶에 담겨진 삶의 비밀들을 해명하고 풀어가는 것이 문학 수업일진대, 내가 수업 시간에 하는 말 중 가장 먹혀들어 가는 단어는 ‘예상문제’다. 

아뿔싸! 종이 친다. 나는 거의 소리치듯 정리한다. 

“횡재가 횡액이 되지 않으려면 역량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에겐 바로 그 역량을 키울 시간이 충분하다는 거예요!” 

시간이 충분하다는 말에 눈빛에 생기가 돈다. 장차 펼쳐질 그네들의 인생역전에 대한 기대가 저릿하게 가슴에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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