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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자료실

제목
아내는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입니다
  • 등록일2003-08-13 11:04:42
  • 작성자 관리자
내용

제법 굵은 비가 내리는 한밤중이나 새들이 지저귀는 새벽녘이면 자주 잠을 깹니다. 뉴질랜드에서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단층의 기와벽돌집은 위층의 바닥이 나의 지붕이 되고 베란다가 중간에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이중창이 되는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라서 기와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너무나 뚜렷하고 크게 들리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빗소리와 새소리에 한 번 깨고 나면 다시 잠을 청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거나 이리저리 뒤척거리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 때문이지요.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10분이 지나지 않아 코를 골아대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약간 불면증 증세가 있어서 언제나 늦게야 잠이 드는데, 그런 아내의 곤한 잠을 깨우지 않으려면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누워서 어둠 속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똥말똥한 생각들을 여기저기로 굴려 봅니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잠에서 깨기 전 꾸었던 꿈을 다시 더듬어 보기도 합니다. 정원의 잔디가 제법 자랐으니 날씨가 좋으면 아침엔 잔디나 깎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생각들 사이사이로 아내의 숨소리가 끼어들고 때로는 아내의 잠꼬대도 끼어듭니다.


가끔씩 아내의 가늘게 코 고는 소리는 들어 보았지만 잠꼬대라니! 그래서 뭐라고 말하는지 몹시 궁금해서 귀 기울여 들어봅니다. 하지만 마치 간절한 기도 끝에 내지르는 방언처럼 빠르게 중얼거리는 아내의 잠꼬대를 나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몸은 한 침대 안에 있어도 아내는 꿈 속에 있고 나는 아내의 꿈 바깥에 있어서 아내의 잠꼬대는 나에게로 건너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어디 아내의 잠꼬대뿐이겠습니까! 아내의 잃어버린 꿈과 희망 그리고 일상의 자잘한 상처와 좌절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나 있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아내의 잠꼬대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은 붉어집니다.


아내를 대화의 상대라기보다 그저 솥뚜껑 운전수 정도로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나의 아내로 생각하기보다 그저 딸아이의 엄마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곰곰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아내는 가끔씩 잠꼬대를 했을 텐데 그것을 이곳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 어지간히 나도 무심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5년의 연애시절 동안 내 삶의 최우선 순위였던 그녀에 대한 나의 관심이 13년의 결혼생활을 거치는 동안 어느새 마누라쟁이에 대한 무심으로 바뀌어져 있었음을 문득 깨달은 것입니다. 남들보다는 좀더 가정적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는 있었지만 그건 그저 다른 맞벌이부부들보다 가사분담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이었을 뿐 아내에 대한 관심의 표현은 아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십대 후반의 최정례 시인이 위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어쩌면 아내도 그렇게 오래 전에 잠들어버린 나의 관심의 등 뒤에서/ 몸을 구부리고/ 벌거벗은 돌멩이가 되어 나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내는 세상의 모든 구름들이/ 밤새 우리 지붕 위를 흘러간 시절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눌 남편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고른 숨을 내쉬고 잠들어 있고 아내는 벙어리 자명종으로 어둠 속에 누워 있었을 테지요.


많은 남자들이 이러한 아내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서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월급쟁이 신세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에 그 책임을 돌립니다.


그러나 집보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이 아내에 대한 무관심의 면제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친구에게는 속을 털어놓으면서도 아내에게는 그저 몇 마디 일상적인 말만 주고받는 것은 결코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없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혹시 잠결에 손을 뻗어 당신이 잡은 건 게임판이거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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