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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도정 이야기

8. 영남 유일의 감영소재지, 경상감영

8. 영남 유일의 감영소재지, 경상감영
경상감영의 설치와 폐지
경상도 개도 700년 기념 특별전 慶尙北道(경상북도) 1314~1896. 2014
경상도 개도 700년 기념 특별전 慶尙北道(경상북도) 1314~1896. 2014

경상감영 대구에 자리 잡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감영(監營)이 있었다. 경상도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감 영은 조선 초 경주에 있다가 상주로 옮겨 임진왜란 때까지 유지됐다. 이때까지 감사는 관할내읍면을 순시하며 민정을 살피는 일이 주 임무였다. 감사가 관찰사라고 불린 이유다. 당시 감영이라고 해야 감 사가 순찰 중간 중간 머무는 정도의 시설만 있을 뿐 이었다. 신구 감사가 교대하는 장소도 감영이 아니라도 경계인 조령이었다. 경주에 있던 감영을 상주로 옮긴 것도 문경새재와 가깝다다는 지리적 여건이 크게 작용했다. 임금의 치세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지 위로 올라오는 법은 없다는 유교적 사상도 영향을 미쳤다.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은 이후 상주, 팔거현, 달성군, 안동 등지를 전전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지리·군사·재정 측면에서 대구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1601년 대구 중구 포정동, 현재 경상감영공원 자리에 정착했다. 감영은 얼마동안의 감영혁파 기간을 제외하고는 1910년 경술국치까지 변화 없이 존속됐다. 당시 감영의 설치 가 곧 대구의 획기적 발전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100여년 뒤 감영을 중심으로 성곽이 설치되면서 대구의 형태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대구에 자리 잡은 경상감영 건물은 세 번의 큰 화재를 겪었다. 특히 1806년 화재는 징청각 23칸, 선화당 36칸, 여수각 12칸, 내아 36칸, 연초당 13칸, 좌우익 랑 36칸, 공고(公庫) 28칸 등 모두 184칸을 전소시켰다. 이 때 전소되어 현재 남 아있는 건물은 선화당(유형문화재 제1호), 징청각(유형문화재 제2호), 관풍루 (문화재 자료3호) 정도이다. 선화당과 징창각은 1807년 순조 34년에 중건하여 1970년 보수하였다. 관풍루는 1906년 대구 읍성이 헐리면서 달성공원으로 옮겨졌고, 1973년 해체·보수하였다. 1807년 관찰사 윤광안이 선화당, 징청각 등의 중건을 추진했다. 1874년에는 외국의 침략에 대비해 경상감영의 256칸의 관아를 수리했다. 조선 후기 고종 때, 경상감영은 경상북도의 중심지였다. 당시 경상 감영은 1896년 갑오개혁으로 지방 행정의 8도제 하에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 으로 현대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했다. 갑오개혁으로 8도 체제가 23부제로 바뀌고 이후 곧바로 광무개혁이 단행되어 1896년에는 13도 체제로 변경되면서 1895 년 경상감영이 폐지되었다. 당시 영리청에서는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경상감영에 있던 문서 및 기록류가 소실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경상감영
현 도청사(경상감영). 1964.
현 도청사(경상감영). 1964.

경상감영 식민지역사의 현장이 되다 1897년 광무개혁으로 각 도가 13도 체제로 변경됨에 따라 폐지됐던 감영제를 대신해 각 도(道)를 관할하는 ‘도청(道廳)’ 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등장하였다. 이때 가 1910년으로 경상북도는 경상감영을 경상북도 청사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때 침탈이 시작되면서 기존의 모습을 가장 먼저 잃은 곳이 경상감영 일대다. 대구읍성과 감영 객사, 부속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선화당에 일제 통감부 이사청이 들어선뒤 대구 경찰서와 대구우편국 등 이 자리를 잡으며 일대는 근대 정치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경상감영은 당시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1909년 경상감영에 순종이 방문하여 선화당 앞에 기념식수를 심었다. 1907년부터 시작한 경상감영의 철거는 1909년 이후 망경루, 관풍루 등 읍성 주요건물이 해체되면서 철거가 완료됐다. 1914년 일제치하에서 경북도청의 공식적 업무가 시작되었다. 경북 도청은 1945년부터 1965년 해방 이후까지 일제 강점 시기에 사용했던 공간을 그대로 이어서 사용했다.

공공기관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중앙공원 준공식 . 1970
중앙공원 준공식 . 1970

경북도청에서 시민의 문화생활 공간으로 도약하다 8·15광복 후 경상감영 자리는 경북도청 자리로 계속 쓰이다가 대구가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승급하자 1966년 경북도청은 산격동 부지로 이전하고 경상감영 부지는 대구시청이 사용했다. 1966년 4월 경북도청이 대구 북구 산격동으로 이전하고, 이어 대구시청도 이전하면서 경상감영부지는 도심 녹지 공간 확보 및 경상감영을 보존을 목적으로 1970년 중앙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선화당은 1966년에 경상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옮겨가고 경상감영이 공원으로 조성될 때까지 경북공무원교육원으로 사용한 건물이었다. 징청각은 1601년에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 올때 선화당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31년까지 경상북도 도청 농무과로 쓰였다. 1982년에 선화당과 징청각은 각각 대구유형문화재 제1호와 제2호로 지정되었다. 1997년 중앙공원은 경상감영공원으로 재정비되어 명칭을 변경 후 개장했다. 이때 도시 미관을 해치는 담장을 허물고 공원 전체를 재조성함과 아울러, 대구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기적으로 대구시는 옛 대구경북병무청 부지 등을 매입하여 경상감영을 완전히 복원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경상감영은 2017년 2월 26일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53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경상도의 최고 지방관청이 있던 경상감영지가 현재는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구는 물론 영남의 주요 문화공간이자 역사교육공간으로 재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대구시는 경상감영의 국가문화재 지정으로 앞으로 경상감영 원형지에 대한 발굴·복원을 통해 사적 지정구역을 확대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구시는 경상감영 및 관련의례 복원과 다양한 축제를 유치하여 경상감영을 역사성을 기반으로한 새로운 문화생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경상감영공원은 2001년 경상감영 400주년 기념행사 장소로 활용하였고 2006년 4월~10월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경상감영풍속재연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1998년에는 대구시 중구청이 전문가와 협업하여 학술적 고증을 거쳐 경상감사도임순력 행차를 복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복원활동을 통해 상주시와 문경시에서 문화제를 개최하여 문화제 개최 기간에 경상감사도임순력행차 재현, 과거시험 재현, 관찰사 재판 모습 등을 재현하는 프로그램이 선보이기도 했다.